위디가 디아스포라 선교를 말하며 늘 주장하는 것이 Glocalization입니다.

즉 세계가 지역처럼, 지역안에서 세계화를 이루는 것이지요.

지금 위디는 7월말에 나가랜드에서 열릴 미션나가2011년 대회를 위하여 준비가 한창입니다.

나가랜드에 파견된 사역자들과 한국 본부에서, 그리고 디아스포라 사역으로 인해

미국에 잠시 방문 중인 실무대표 문창선 목사는 거의 매일 스카이프 프로그램을 통해 컨퍼런스 통화를 하며

미션나가2011 대회를 준비하였는데, 컨퍼런스 대화를 할 때마다 Glocalization을 실감합니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인도 나가랜드에서 동시에 대화할만한 세상이니 이 얼마나 선교하기 좋은 세상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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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봉사이다. 소위 “디아코니아”라 일컬어지는 남을 위한 헌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에 사역에서 이루신 이타적(利他的)인 삶의 표방이며 완성이다.

그 봉사가 교회 안에서와 교회 밖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안에서라 함은 성도간에 서로 섬기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안내, 만나실, 운행, 주보 작업, 교사, 찬양대, 청소, 성찬 등을 들수 있다.

교회 밖에서의 봉사는 주님의 말씀처럼 사회와 세상에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이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녹아지는 것이다. 희생이다. 없는 듯 있으며, 없어서는 안되는 지극히 조용한 진행이다.

가난한자와의 나눔, 남을 높이고 세우는 디딤돌의 역할, 양보와 배려, 좋은 일에 대한 솔선수범, 그늘진 곳에 대한 관심과 지속적인 실천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내용이 많다.

지난 주일 오후 봉사관리국의 주관으로 펼친 동네와 등산로를 청소한 일은 작은 실천이라 하겠다. 남에게 보이려는 제스쳐라기 보다는, 사랑의 축제가 지니는 궁극적 목적을 이루는 우리 스스로의 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가 무엇을 하든지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다음날 아침에도 강도 만난 자를 위해 도움을 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말이다. 사랑의 축제를 통해 이렇게 자라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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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가변혁 컨퍼런스에서 교회의 역할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이루는 것에 대하여 교회가 교육(가정), 경제(활동) 및 정치(권력) 부분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더욱 강조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이주민 선교를 하고 있기에, 이 사회 안에 향후 2020년까지 500만 명의 이주민들이 증가할 것이라 보고며, 저들의 정주화 되어가는 과정 속에 교회의 역할이 대단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주 이주민들의 가정과 자녀교육, 근로 참여 및 경제 활동 그리고 문화 적응 및 국적 취득에 따른 지원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최근 한국 지역에 세계화가 이루어져 다문화 다민족이 형성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내의 세계화 진행요인은 국내의 고령화 시대 및 저출산으로 인해 노동 시장의 인력난과 성비율의 불균형으로 국제결혼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교회는 복지 및 복음전파 사역으로 이주민 선교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정부의 수시로 달라지는 이주민 정책에 따라 이주민 선교 사역의 내용과 방법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중, 많은 유형의 종교성이 이주민들을 통해 한국 사회에 유입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유럽의 ‘기독교 퇴보, 이슬람 성장’이라는 기독교의 위기는, 유럽에 정착하고 있는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주민 선교의 정책과 방법에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한국 교회도 이 부분에 위기감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2009 국가변혁 컨퍼런스 논찬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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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주 근로자들은 2008년 현재 1억 2천 5백만 명에 달하며, 이들은 대부분 10/40창에 속한 나라 출신들이며, 아시아의 한국, 일본, 홍콩, 싱가폴, 대만, 중동의 사우디 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유럽의 전 지역, 북미의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 등의 21개국에 분포해있습니다.

한국에도 이주민들이 많이 체류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외국인 근로자 선교정책은 크게 두 가지 흐름이었습니다. 하나는 외국인근로자들의 인권과 지위 향상 및 복지와 구제에 치중하는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을 우선적으로 제시하여 영혼 구령과 제자 양육에 중심을 두는 정책입니다. 이와 관련, 복음과 구제 선교는 균형 잡혀야 합니다.

최근 다문화 다민족이라는 사회 현상과 국내 체류 이주민의 숫자가 120만명을 넘어서면서, 이주민 선교에 대한 정책이 대두되고 있는바, 정주(定住)쪽의 선교 전략 및 대책 수립과, 비정주(非定住) 근로자들을 활용한 역파송 선교의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사역이 펼쳐져야 합니다.

이들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세계선교 자원화에 성공한다면 한국 교회는 세계복음화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비정주 그룹의 외국인 근로자 출신 선교 사역자를 양성, 역파송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시니어 선교한국 주제발표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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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가나와 두바이에서의 사역을 마쳤다. 가나에서의 사역은 위디 출신 현지 사역자들의 교회 봉헌과 선교 센터 건립을 위한 기공 예배와 외국인 근로자 선교에 대한 세미나 및 집회 인도였다. 두바이에서의 사역은 코나 지원 사역 및 현지 교회 파악 사역이었다.

가나의 사역은 무더운 날씨와 환경의 열악함, 음식 섭취의 제한성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지독한 은혜와 감동 및 강한 도전이 있었다. 그들의, 비굴함 없는 생존의 몸부림을 가능케 하는 것은,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감사였고 모든 시작과 끝을 예배로 장식하는 것이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노아의 저주 이야기(창9:25)의 당사자들...그래서인지 문명으로부터의 소외는 오랜 가난의 꼬리표를 달아야 했으며 노예와 종으로 살아야 하는 슬픈 역사를 지닌 채 지금도 삶의 구석구석에 아픈 흔적들이 베어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흐름에는 고난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하며, 그것이 부활신앙의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는 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행4:22)”이라는 말씀은, 이들의 삶을 두고 하시는 것 같다.

두바이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많은 투자를 통해 인공으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하늘높이 치솟은 건물들과 사막에 물을 공급하여 도시 녹지를 조성했다. 인공으로 섬을 만들어 입주자들이 개인 해변을 소유케 하는 기상천회할 만큼 문명의 이기가 풍족한 곳이다.

그러나 모슬렘의 종교 경찰의 긴장감이 흐르며, 인간의 힘이나 기술로 어찌 해볼 수 없는 뿌연 먼지와 모래바람이 온 도시를 덮어, 낮의 풍경보다는 밤의 조명을 더 선전하며, 억지로 심어놓은 나무는 자연과의 조화는 커녕 극히 조악하기까지 했다. 이런 곳에 소망이 있을까?

이글은 가나의 예찬과 두바이의 폄하가 결코 아니다. 다만 공의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금생(今生)과 내생(來生)을 관통하신 다는 것을 말하고자 싶을 뿐이다.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맞이하며, 한시적인 이 땅의 풍족이 다가 아니라 그 너머에 펼쳐질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며 기독교의 고난을 이해하고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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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에 도착한 캘커타 공항에는 입국한 사람들을 맞이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그중 눈에 띠는 한 가족이 있었는데, 엄청난 숫자로 보아 아마도 모든 가족이 다 나온 것 같다. 어차피 그곳에서 밤을 지새워야하는 처지라 그 가족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아들이 모습을 나타내자 모두가 환호하며 맞이한다. 한사람 차례차례 얼싸안고 기뻐한다. 볼에 입을 맞추고 피차 등을 토닥인다. 그런데 마지막 순서는 아버지였다. 아들을 먼저 맞이하고 싶었겠지만, 빙그레 웃으며 다른 가족에게 양보하며 기다렸다.

단 한번 힘껏 안으며 눈을 맞춘 아버지는 그 아들이 자랑스러워 가슴벅차해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이내 다른 가족을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우리네 가정에서 흔히 보는, 표현에 약하신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희생 없이 그 아들이 금위환향 할 수 있었겠는가? 새끼를 위해 헤어질대로 헤어진 몸을 버거워하며 숨을 몰아쉬는 가시고기처럼, 우리의 아버지들은 늘 그렇게 살아오시지 않았던가? 필자는 먼 이국에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절감하며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 짖고 있다.

망부가로 대신 할 수없는 그리움을 자녀에 대한 내리사랑으로 채워야 하겠으나, 나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의 나에 대한 사랑에 눈꼽만치도 못하다는 사실만을 절감하며 또 한번 눈물지을 뿐이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실 뿐 아니라 “아바” 즉 아빠라고 부르셨다. 사도 바울은 우리도 하나님을 아바라 부를 수 있는 후사가 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그 하나님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기에, 나는 너무도 감사할 뿐이며 매순간 큰 위로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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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 효과(Broken Window Effect)가 있다. 유리창이 한 장 깨졌다. 겨우 한 장이니까 생각하며 방치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진 유리창이 점차 늘어난다. 사람들의 인식은 어느덧 그 건물은 그러려니 하고 바뀐다.

여러 깨진 유리창은 건물 전체를 낡고 형편없는 것으로 침식시킨다. 작은 흠집이 모여 구조물 전체가 낡게 평가절하 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건물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지역 자체가 낙후되고 기피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깨진 유리창 효과(Broken Window Effect)이다.

며칠 전 교회 차량의 전체 수리를 하였고 새로운 광택을 의뢰했다. 그런데 수리야 필요하지만 광택까지는 지출을 줄여야 하는 정서적인 시점과 차량의 연식에 따른 점을 감안해볼 때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충분히 필요한 의견이다.

그럼에도 경비의 지출을 무릅쓰고 광택을 하였다. 바로 깨진 유리창 효과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더욱이 교회 차량이 아닌가?... 또한 이 후로는 누가 운전을 하여도 새 차처럼 느껴지기에 더욱 잘 관리되어지길 바라서이다.

성경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교훈하며, 누룩의 실례를 통해 작은 것에 대한 방치가 가져다는 주는 심각함을 경고하고 있지 않은가? 작은 죄의 용납이 큰 죄에도 무덤덤할 정도로 영적인 둔감함에 빠지게 한다.

따라서 어떤 작은 죄라도 회개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매일매일 충실한 기도 생활과 경건을 이루어 영혼과 육신을 성결하게 지켜나가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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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디국제선교회 실무대표 문창선목사


18세기 말에 한국에 들어온 어느 선교사는 “한국인을 보면 마치 요한계시록 7장에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 보좌 앞에 서있는 구원받은 백성들, 곧 흰 옷 입은 사람들로 연상된다”고 자신의 책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택에 힘입어 의인이 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과연 한국은 동방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뿐만 아니라 흰옷을 즐겨 입는 민족으로 그만큼 평화를 사랑하고 순결하고 착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연 오천년 역사 속에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많은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IT 산업의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스포츠강국이 되었으며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엄청난 개가를 연이어 이루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만들어지는 눈부신 제품 등은 이미 세계가 부러워하며 앞 다투어 그 기술력을 배우려하고 있습니다. 최근 불고 있는 한류열풍도 결코 우연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조그마한 나라가 전 세계에 13,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사 파송 제2위의 거대한 나라가 되어 세계 선교를 이끌고 있으니,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이요 특별한 섭리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들어 세계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아주 오래전부터 깊이 관여하시고 당신의 뜻을 하나씩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신구약 중간기에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듯합니다. 그저 침묵하신 듯 보이나 실은 세계의 역사를 움직이셔서 당신의 정하신 때를 위하여 철저히 준비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즉 헬레니즘을 통해 헬라어를 세계의 공용어로 만드셔서, 어디서나 언어 소통이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헬라어만 구사할 수 있으면 쉽게 복음을 증거하고 교육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를 통하여 세계를 통합하셔서 지역화된 곳은 어디는 만들어 놓은 대로를 통해 달려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과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로마 시민권만 있으면 어디는 방문하거나 머무는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즉 비자를 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와 사도 바울의 능력 있고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미리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뿐아니라 현대에서도 하나님께서 깊이 주관하셔서 선교의 때를 준비해 놓으신 것을 발견 할 수있는데 그것이 바로 중국의 경우입니다. 중국의 문화혁명은 서구 선교사들을 추방케하는 원인이 되었으나 선교의 관점에서 볼때 오히려 중국 크리스찬들이 외부의 후원이나 도움 없이 가정교회로 자생하고 힘 있게 발전하였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또한 이일로 인해 한국은 특별한 유익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슬람권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엄청난 포교 활동으로 모슬렘 세력을 확장시켜나가는 이슬람교도들의, 동쪽으로 뻗어나가려는 정책과 힘을 하나님께서는 중국의 죽의 장막을 통해 막으셨고 차단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한국 교회는 영적인 방해 없이 복음 안에서 단시간 내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국은 밀레니엄 시대에 세계선교를 주도하는 도구로써 사용되어지기 위하여 오랜 기간 고난의 역사를 지니며 기독교가 절실히 필요한 나라로 준비되어왔으며, 복음이 전해질 때 단시간에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며 가난과 고난이 부와 소망의 나라로 바뀌어진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신음 하는 가난한 나라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여 비참한 운명적인 삶을 사는 열방들에게 한국은 복음적 모델이요 소망을 심는 선교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한국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세계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한국 교회에게 여전히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가난과 우상에 빠져 탄식하는 영혼들을 맡기시고 책임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저들로 하여금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복음의 능력을 누리며 살도록 우리에게 전하고 가르치라는 것, 곧 선교하도록 지금까지 준비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우리의 역할에 대하여 권면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맞추어 보내심을 받은 자들로서 선교 사역을 충실히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복음의 신을 신고 오대양 육대주로 달려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화목으로 인해 누리게 된 부요와 윤택의 비결을, 저 가난한 자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래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요, 백의 민족이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선 의인들로서의 거룩한 의무를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18세기 말에 한국에 들어온 어느 선교사는 “한국인을 보면 마치 요한계시록 7장에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 보좌 앞에 서있는 구원받은 백성들, 곧 흰 옷 입은 사람들로 연상된다”고 자신의 책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택에 힘입어 의인이 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과연 한국은 동방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뿐만 아니라 흰옷을 즐겨 입는 민족으로 그만큼 평화를 사랑하고 순결하고 착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연 오천년 역사 속에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많은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IT 산업의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스포츠강국이 되었으며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엄청난 개가를 연이어 이루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만들어지는 눈부신 제품 등은 이미 세계가 부러워하며 앞 다투어 그 기술력을 배우려하고 있습니다. 최근 불고 있는 한류열풍도 결코 우연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조그마한 나라가 전 세계에 13,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사 파송 제2위의 거대한 나라가 되어 세계 선교를 이끌고 있으니,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이요 특별한 섭리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들어 세계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아주 오래전부터 깊이 관여하시고 당신의 뜻을 하나씩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신구약 중간기에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듯합니다. 그저 침묵하신 듯 보이나 실은 세계의 역사를 움직이셔서 당신의 정하신 때를 위하여 철저히 준비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즉 헬레니즘을 통해 헬라어를 세계의 공용어로 만드셔서, 어디서나 언어 소통이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헬라어만 구사할 수 있으면 쉽게 복음을 증거하고 교육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를 통하여 세계를 통합하셔서 지역화된 곳은 어디는 만들어 놓은 대로를 통해 달려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과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로마 시민권만 있으면 어디는 방문하거나 머무는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즉 비자를 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와 사도 바울의 능력 있고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미리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뿐아니라 현대에서도 하나님께서 깊이 주관하셔서 선교의 때를 준비해 놓으신 것을 발견 할 수있는데 그것이 바로 중국의 경우입니다. 중국의 문화혁명은 서구 선교사들을 추방케하는 원인이 되었으나 선교의 관점에서 볼때 오히려 중국 크리스찬들이 외부의 후원이나 도움 없이 가정교회로 자생하고 힘 있게 발전하였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또한 이일로 인해 한국은 특별한 유익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슬람권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엄청난 포교 활동으로 모슬렘 세력을 확장시켜나가는 이슬람교도들의, 동쪽으로 뻗어나가려는 정책과 힘을 하나님께서는 중국의 죽의 장막을 통해 막으셨고 차단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한국 교회는 영적인 방해 없이 복음 안에서 단시간 내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국은 밀레니엄 시대에 세계선교를 주도하는 도구로써 사용되어지기 위하여 오랜 기간 고난의 역사를 지니며 기독교가 절실히 필요한 나라로 준비되어왔으며, 복음이 전해질 때 단시간에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며 가난과 고난이 부와 소망의 나라로 바뀌어진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신음 하는 가난한 나라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여 비참한 운명적인 삶을 사는 열방들에게 한국은 복음적 모델이요 소망을 심는 선교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한국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세계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한국 교회에게 여전히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가난과 우상에 빠져 탄식하는 영혼들을 맡기시고 책임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저들로 하여금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복음의 능력을 누리며 살도록 우리에게 전하고 가르치라는 것, 곧 선교하도록 지금까지 준비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우리의 역할에 대하여 권면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맞추어 보내심을 받은 자들로서 선교 사역을 충실히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복음의 신을 신고 오대양 육대주로 달려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화목으로 인해 누리게 된 부요와 윤택의 비결을, 저 가난한 자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래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요, 백의 민족이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선 의인들로서의 거룩한 의무를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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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외국인 선교

위디국제선교회

실무대표 문창선 선교사

서론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주 근로자들은 2008년 현재 1억 2천 5백만 명에 달하며, 이들은 대부분 10/40창에 속한 나라 출신들이며, 아시아의 한국, 일본, 홍콩, 싱가폴, 대만, 중동의 사우디 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유럽의 전 지역, 북미의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 등의 21개국에 분포해있습니다.

 

한국에도 이주민들이 많이 체류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외국인 근로자 선교정책은 크게 두 가지 흐름이었습니다. 하나는 외국인근로자들의 인권과 지위 향상 및 복지와 구제에 치중하는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을 우선적으로 제시하여 영혼 구령과 제자 양육에 중심을 두는 정책입니다. 이와 관련, 복음과 구제 선교는 균형 잡혀야 합니다.

 

최근 다문화 다민족이라는 사회 현상과 국내 체류 이주민의 숫자가 120만명을 넘어서면서, 이주민 선교에 대한 정책이 대두되고 있는바, 정주(定住)쪽의 선교 전략 및 대책 수립과, 비정주(非定住) 근로자들을 활용한 역파송 선교의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사역이 펼쳐져야 합니다.

 

이들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세계선교 자원화에 성공한다면 한국 교회는 세계복음화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비정주 그룹의 외국인 근로자 출신 선교 사역자를 양성, 역파송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본론

한국 교회는 품안의 이주민에 대한 복음화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세계 이주민 선교의 기수가 될 수 있습니다. 선교전문가들은 “품안에 들어온 이주 노동자를 제자양육을 통해 선교지로 역파송하면 세계복음화의 지수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외국인 사역이 이처럼 선교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니지만, 국내 외국인들에 의하여 한국인들이 역선교 당할 수 있다는 점과 저들의 종교 성향에 의해 한국 교회와 선교계가 위협받을 수 있기에 더욱 선교의 위기감 또한 지녀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제3세계와 미전도 종족을 위해 왕성한 선교 사역을 펼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열정 또한 대단하나 선교 내용에 있어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선교사 중복 파송, 선교사의 주관적 사역, 선교사의 언어 및 자질 부족, 다른 선교단체와의 협력 불감증, 한국식의 속성 사역 지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선교는 자립을 목표로 교회 개척 중심의 프로그램, 고급 지도력을 가진 신학교 출신의 목회자, 자체 건물을 가진 교회 등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셀 교회 등이 선교지에서 주목받는 전략입니다. 이것은 규모가 작고 평신도 지도력으로도 가능한 재생산성이 높은 전략입니다.

 

작금 한국교회의 선교는 다양한 패러다임 쉬프트가 필요합니다. 해외선교에 편중에서 벗어나, 국내의 미개발 지역 사역도 선교로 간주하며, 전체 5만여개의 교회 중 85%인 개척교회와 농어촌 교회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높이고, 시니어(40~80세)들의 인력 자원을 활용하여야 합니다. 아울러 외국인 근로자 및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 사역에 더 많은 참여를 하여야 합니다.

 

이 시대는 문화충돌 정도가 아니라 종교 갈등을 넘어선 종교전쟁의 시대입니다. 따라서 선교가 노출되지 않고 조용히, 그러면서도 효과성을 추구해야합니다. 이것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통한 역파송과 같은 사역으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주민 선교 사역에 있어서 비정주 근로자들을 선교사로 양성하여 본국과 제3국 파송하기 위해서는, 선교 사역의 전문성 개발과 이주민 선교전문가 양성, 선교 사역 단체간의 협력과 정보 공유 및 선교 전략 공동 연구 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각 분야의 시니어들이 이주 근로자 선교학교(MMTS)같은 과정을 통해 이주민 선교에 필요한 사역자들로 훈련되어 섬기는 교회 내에서의 선교 활동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결론

돈과 인력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 움직이는 세계 상황을 놓고 볼 때. 국내의 비정주 근로자들을 선교사로 양성하여 본국과 제3국으로 역 파송하여 전세계 1억 2천만 이주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선교사역을 펼치고 이루는 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한국 선교계에 주시는 선교의 기회요 도전임을 확신합니다.

 

성경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땅 끝은 어디입니까? 실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곧 땅 끝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이 곳이, 바로 땅 끝의 선교 현장입니다. 우리들도 이 땅 끝에서 만나고 있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선교해야 합니다. 특별한 교육을 받고 인준을 받은 특정한 사람만이 행하는 선교가 아니라 주를 믿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교회 모든 시니어들이 우리 앞에 와있는 이주민을 선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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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1 14:22:23

지난 한해동안 선교한국의 퍼스펙티브와 위디국제선교회의 MMTS(외국인 근로자 선교 훈련 학교) 및 8차 프리미션을 통해 선교 사역 훈련을 받은 이병호, 이영선 선교사 부부가 지난 위디 총회를 통해 나가랜드 선교사로 파송 받았습니다.  



파송식에서 윤민영 이사장님은 로마서 16장을 통하여 동역자란 주제로 축복의 말씀을 전하셨고, 김동화 이사님은(GBT,GMF) 군림하려하지 말고 친구처럼, 종처럼 오히려 현지인들에게 기대어 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MMTS 2회 동기회의 이오림 목사님은 청지기적 사명에 대하여 축사하셨습니다.

 

나가랜드는 이미 복음화 된 곳입니다. 그곳은 선교지가 아니라 선교의 요충지입니다. 준비된 자들이 있으며 사용될 수 있는 자들이 가득합니다. 나가인들에 의해 영향 받게 될 북동부 인디아 7개주와 서아시아의 인종과 종교 성향은 대단히 많고 중요합니다. 그곳에 파송되어 사역한 다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매우 독특하며 달라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에디오피아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순례하며 틈틈이 성경을 읽을 만큼 경건하며 신앙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도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야 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사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다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이 사람은 ‘나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가 타종교와 차별되는 면은 타종교에서는 명상이니 수행을 통해서 저마다 각자 깨달아야 된다고 말하나, 복음의 진리는 스스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복음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에디오피아 사람이 빌립을 초청해서 수레를 태웠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 빛을 발하는 사람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면, 사람들이 그를 필요로 하고 사람들이 그를 저절로 높입니다. 그 사람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고 알고 있는 이병호 선교사 내외는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남에게 유익한 사람,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성도요 평신도 선교사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늘 그들을 인정한 것처럼, 나가랜드에서도 이 부부를 필요로 하여 정부에서 비자도 내주고 RAP도 내주었습니다. 이것은 나가랜드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 일에 충실하면 그이외의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심을, 다시 한번 이병호 선교사 부부의 파송을 통해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두 분이 나가랜드에서 위디국제선교회의 일꾼으로서 미션나가 대회와 이주민 사역의 밀알 되기를 바라며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문창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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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06:15:57

가치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전략경영이론인 블루 오션(Blue Ocean Strategy)이 21세기를 선도하는 경영이론으로 부각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일렬로 정해진 코스를 달리면서 최고가 되기 위해 아옹다옹하는 것보다 새로운 코스로 방향을 바꾸어 독자(獨自)의 새로운 판(Reshuffle)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논리는 단순하다. 누구나 풀장에 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침에는 풀장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물도 깨끗하다. 그래서 상쾌한 기분으로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몰려들면 즐기는 효용성이 떨어진다. 효용성은 일종의 가치의 관점이 되며,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 창출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현재 경쟁이 치열한 산업(혹은 마켓)은 오염됐으니, 이곳을 버리고 청정한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여 가치의 변화를 모색하던가, 아니면 오염지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든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관성의 원리에 의해서일까? 많은 기업들이 오염지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렇다면 블루 오션 이론이 교회에서도 통할까? 성장의 답보에 빠진 우리 교회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멋진 프로그램으로? 편안한 시설로? 세련된 친교로? 지역적 수준 향상으로?...안타깝게도 답보상태에서 벗어나 성장을 이루려는, 우리의 생각보다 많은 수의, 교회가 이런 블루 오션의 계획과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능력과 참 신앙을 대표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에서는 이러한 이론이나 방법이 필요치 않았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께서 친히 믿는 자의 수를 더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이 왕성해가고 큰 무리가 모이며 서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의 진정한 블루 오션은 주님의 몸으로서의 성결함과 사랑의 도구로써의 정체성을 지니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

남이 다 하는 일에 뛰어들지 말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불루 오션이나, 교회 부흥에 있어서는 오히려 기본적으로 해야 할 말씀과 기도, 그리고 전도에 초점을 둔, 결코 새롭지 않은 전략이 교회의 블루 오션이라고 했다.

그런데 선교적 관점에서의 블루 오션은 조금 다를 것이다. 선교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낼 필요가 있다. 위디국제선교회의 외국인 근로자 사역, 세계이주근로자 선교 사역 그리고 나가랜드와 북동부 인디아 사역이 그것이다.

선교에 있어서 블루오션 전략을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울이다. 바울은 선교하면서 그의 사역 전략에 대해서 이렇게 밝혔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15;20)

이 말을 부정적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사실 바울의 의도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이 너무나 많이 있고, 해야 할일도 많이 있기 때문에 구지 남이 이미 하고 있는 사역보다는 새로운 사역의 장으로 나아가겠다는 블루오션 전략이다!

선교지를 한번 방문해 보면 거기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블루오션 전략을 발휘할 수 있는 첫 단계는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는 일이다. 그렇다면 엄청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사역과 일들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남은 것은 그 발견한 선교 사역에 도전하는 용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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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12 16:18:01


추석에는 농악대가 풍물을 울리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바탕 신나게 풍물을 울리며 어우러져 놀다가 소놀이를 합니다.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그 위에 멍석을 뒤집어 씌우며 뒷사람은 큰 새끼줄로 꼬리를 달고, 앞사람은 막대기 두 개로 뿔을 만들어 소의 시늉을 합니다.

소를 끌고 농악대와 마을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가장 부농집이나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사람의 집으로 찾아가서 대문 앞에서 '소가 배가 고프고 구정물을 먹고 싶어 왔으니 달라'고 외치면 주인이 나와서 일행을 맞이합니다.

주인집에서는 떡과 찬을 차려 대접하는데, 농사를 천하의 대본으로 여겨온 농경 민족에게 있어 머슴들이 농사를 잘지어 풍작을 거두게 하였다는 것은 큰 공이니 위로하고 포상하는 뜻에서 소에 태우고 대접을 하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머슴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만은 오늘날 추석에 즈음하여 외국에서 일하러 온 근로자들을 그 노동에 대하여 위로하고 대접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추석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그랬듯이 오는 추석에도, 산소망 교회와 위디 선교회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수련회를 개최합니다. 이 수련회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쉼과 영성의 회복이 함께 어우러질 천국잔치가 될 것입니다.

"Let the peace of Christ rule in your hearts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골3:15)"라는 주제로 진행될 잔치에 많은 관심과, 특히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강을 체험하게 되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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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03 07:03:49

이렇게 바쁠 수 있을까? 무엇하나 소홀히 할 수 없고, 게다가 우선과 차선을 나눌 수 없는 일들로만 가득하다. 그 와중에도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것은, 바쁘다 여겨지는 모든 일들이 다 주님의 일이요 사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바쁘다는 것 때문에 중요한 주님의 일을 소홀히 할까봐 그것이 걱정이 되는 것이다.

선교한국 2008 대회를 참여하고 강의와 부스 홍보를 행하면서 다른 선교 단체와 상대평가를 해보았다. 결코 뒤지지 않는 역량과 사역의 내용....그러나 그들은 여유가 있었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바빴고 지쳤다. 이유가 무엇일까? 혹자는 기도 부족이라고 말하며 단순한 진단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역을 이끄는 필자에겐 다른 이유가 있음이 느껴졌다.

그것은 정기적인 행사에 비해, 우리 스텝들은 경험이 없는 새로운 사람이며, 모든 준비와 진행을 늘 처음처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소속감을 갖고 계속 일하는 스텝들의 부재(不在)가 이 같은 문제의 원인인 것이다. 앞으로는 산소망과 위디 사역에 함께 할 협력자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속감을 지녀 장기적인 사역을 함 께 하도록 요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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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8-04 15:47:12

아침 9시 30분경에 위디 스텝과 미션나가 스텝, 송정섭이사님, 이병호선교사님, 문종석 선생님 모두 12명이 안산동산교회로 출발을 하였습니다. 아직은 한산한 대회장이었지만, 가는 도중에 선교한국으로 부터 재촉 전화를 받았습니다.

부랴부랴 부스를 설치를 마치고, 부스를 설치하는 중에 홍현덕 이사님께서 격려차 방문하셨습니다. 이른 점심을 맛있게 먹고, 한 참을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2시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이야기중에 나영자매가 도착했습니다.

지금은 부스에서 접수하여 부스를 둘러보는 참석자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아직은 어떤 선교단체도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하지 않는 한산한 분위기입니다(앉아있기가 따분할 정도임).

김진우 간사와 종석형제, 나영자매, 미션나가 스텝들은 참석자로 접수를 마치고 대회장으로 올라간 상태이고, 문목사님은 대표자 회의 참속중입니다. 사모님과 송정섭 이사님은 교회로 돌아가시고, 홍현덕 이사님은 음료수를 사주시고 사모님과 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한산한 부스입니다.

내일부터는 이부스가 말그대로 선교시장이 될것입니다. 많은 선교 자원과 자원봉사자의 확보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또 한가한 시간을 빌어 글을 올리도록하겠습니다.

정말 재미 없는 글 이상  임정규 목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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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4 13:58:12

지난 월요일 새벽 예배를 마치고, 곧 바로 필리핀에 갔습니다. 선교지에 오가는 항공 비용은 위디 이사님께서 전액 지원을 해주시기 때문에 부담이 없지만, 목회의 시간을 선교로 나누어 쓰는 것에 대해서는 늘 부담이며 성도님들께 적쟎은 송구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금요일 로마서 강해 때 사도바울이 기록한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롬14:24)"는 대목에서 큰 위안과 도전을 받은지라, 자신있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코나 사역까지 겹치면서 더욱 바빠지고 더 많이 오가게 될터인데, 많은 기도와 마음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방문한 라오악 지역은 필리핀 루손 지역의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21년 된 Reachout Living Way Fellowship 교회로써, 지난 가을때부터 축복집회를 요청한 곳입니다. 일루가노를 사용하는 지역으로써, 저 또한 생소하였지만 약속을 지키는 차원에서라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바쁘고 나가랜드에서의 큰일을 막 시작하려는 싯점인지라 스케쥴을 취소하려 했지만, 그곳 성도들이 오랫동안 기도해왔다는 말을 듣고 감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늘 작은 일에 충성해야 큰 일을 할 수 있기에,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도 작은 일에 충성 함이 또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맑은 하늘에 쏟아지듯 수놓은 수많은 별들을 보며 양철로 만든 2인 화물용 지프니에 6명이 매달리듯, 힘겹게 꼬불꼬불한 산길을 2시간 남짓 달려 도착하니 밤 11시였는데, 그때까지 찬양하며 기다리는 성도를 보며 와야할 곳에 왔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깊이 감사했습니다. "아, 만약 이런저런 일로 오지 않았다면 정말로 큰 실수였음"을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이 산골의 조그마한 교회에서 그동안 10명의 주의 종들이 배출되었는데, 모두가 한결 같이 성실하게, 산골 곳곳마다 교회를 세워 묵묵히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각 성도들을 이끌고 마당에 천막을 치고, 함께 밥을 지어 먹으며 집회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니 사도행전 교회가 따로 없었습니다.

더더욱 제가 감사한 것은 이 교회가 홍콩에 하와이에 쿠웨이트에 근로자로 나가있는 자국인 필리핀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고, 그 교회 출신 제자들이 각 현지에서 예배인도자로 사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디의 주된 사역이 바로 그런 것이다는 것을 듣고 활짝 웃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왜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낸 신 줄 알았습니다.

머무는 내내 쌀과 토마토, 그리고 직접 강에서 잡은 고기를 튀긴 것이 전부인 조촐한 음식이었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동안 모은 볼펜, 부채, 행사에서 얻은 수건, 먹으려고 가져간 컵 라면 4개, 사용하지 않은 새 치약 1개를 모두에게 나눠주니 얼마나 행복해하던지...그날 모두가 한국 치약으로 함께 이를 닦고 하루종일 이를 드러내고 함께 웃었습니다.

지니고 있던 선교 경비 15만원을 필요하다 여겨지는 분들께 조금씩 조심스럽게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받으며 금새 눈물이 고여짐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 좀더 있어 더 나눌 수 있었으면 더 좋으렸만... 그러나 거기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고, 나머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하실 것을 믿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집회를 마치고 그들이 저에게 쥐어준 선물은 외국산 티셔츠였습니다. 아마도 외국에 근로자로 나가있는 성도 가족 누군가가 보내준 것을, 아끼고 간직하고 있다가 제게 준 것같습니다. 서로 자기 것을 가져와 보고 고르고 좋다는 것을 택하여 제게 준 것이 분명합니다.

기도만 하면 우는 버나드, 모두를 웃기는 싸미, 콧 수염이 멋있는 랏치나, 이름은 모르지만 우직하여 궂은일을 다 하며 씩 웃는 형제... “기도의 능력 및 하나님의 약속, 생각의 변화,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성령의 불" 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집회의 결실이, 이들의 삶에 맺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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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4-08 11:33:52

 

이번 나가랜드 방문 사역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하겠다이다"(God permit, I will do so)"였습니다. 거의 6개월만의 방문 사역인지라 해야 할 일이 당연히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허락하셔야 해야 할 일들 이었습니다.

그동안 나가랜드 사역이 일취월장하기까지는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를 끊어야 하는 아픔도 있었고, 믿었던 도끼에 발 등 찍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허지만 모두 옥석을 가릴 수 있는 기회였기에 오히려 감사하였습니다.

무소유와 나눔이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선교지 나가랜드에서 실천했던 위디에게,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으로, 풍성한 것으로, 존귀한 것으로, 더하여 주셨습니다. 기도해온 어느 손길을 통해 100에이커의 대지를, 또한 다른 손길을 통해 건축까지도 허락하셨습니다.

숙원 사역이었던 생강사역과 기능대학교 사역에 대해 주정부에서는 350에이커와 모든 시설을 지원하였습니다. 이에 이에 위디국제선교회의 나가랜드에서의 통전적(通全的)인 선교가 시작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북동부 인디아와 서아시아를 향한 선교가 더욱 가능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때 맞추어 나가랜드를 방문중이던 미국 선교팀과 미션나가의 비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이에 한국의 위디와 미국선교팀과 나가랜드 교계지도자들과 함께 미션나가2009 대회를 함께 준비하고 진행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하리라! 아멘!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함께 기도하며 마음을 같이하신 산소망 교회 성도들에게 마음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위디국제선교회의 사역에 한층 더 참여하시기를 두손 모아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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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8 11:58:30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절제하고 부활의 축제를 준비하는 ‘사순절’ 기간입니다. 올해는 이 사순절이 보름정도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부활절을 앞둔 40일간을 사순절로 지킵니다. 이는 부활주일을 기점으로 역산하여 도중에 들어있는 주일을 뺀 40일간을 주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 묵상하며 경건히 보내고자 하는 절기입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심, 시내산에서의 모세의 금식,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예수의 부활에서 승천까지의 기간같이 고난과 갱신의 상징적 기간이며, 고난 주간을 포함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의 구속을 위해 수난을 당하신 사건에 담긴 구속사적의의를 살펴보며 자신의 신앙을 재 각성하며 40일간의 절제 기간을 갖는 것이 바로 사순절의 의미입니다.

사순절에는 범죄한 인류를 위해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의미에서 불우한 이웃을 위한 구제와 자선이 행해졌습니다. 특히 사순절에 행해지는 금식 기도를 통해 주님의 고난에의 동참, 불의한 자신에 대한 회개뿐만 아니라 불우한 이웃의 배고픔과 가난을 생각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실천에 있음을 기억할 때, 성도로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사랑을 본받아 이를 실천함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라 할 것입니다. 이에 위디사역자들 모두 경건과 절제있는 사순절을 보내며 특히 부활절의 메세지를 온 세상에 선포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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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08 18:06:37

성경에 믿음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구절은 창세기 15장입니다. 6절 말씀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구약을 통틀어서 핵심이 되는 성경 구절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울 신학이 이 성경 한 구절에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원리가 여기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믿게 했습니까?

밤하늘의 별, 하나님께서 그를 데리고 나가서 밤하늘의 별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시청각교육입니다.

그전까지는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비전이 없었고 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비로소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빛이 비치기 시작하고, 비전이 생기기 시작하고, 마음속에 뭔가 소망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써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니라” 그러니까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믿음이 먼저입니까, 영혼에 불이 들어오는 것이 먼저입니까?

영혼에 불이 들어와야 믿을 수가 있습니다. 캄캄한 실내에서 비상구의 불이 보여야 그리로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동방박사들이 별빛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 갈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의 스위치를 켜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스위치를 켜 주시면 그때부터는 이전에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고, 이해되지 않던 성경 구절이 이해되기 시작하고 믿어지지 않던 것들이 믿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마음에 불이 빛나기 시작해서 이전까지는 믿음이 뭔지 모르고 왜 교회에 다녀야 되는지 모르고 왜 열심을 내야 하는지도 모르다가 비로소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도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고, 섬길 수 있고, 생명까지도 바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마음에 불이 켜져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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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8 07:42:03

“하얀 눈길을 걸을 때에 뒷 사람을 위하여 똑바로 걸어라!” 이것은 백범 김구의 말로써 먼저 개척한 자들이 후발 주자를 위하여 모범을 보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만일 곧지 못한 발자국을 남겨 그것을 보고 따르다보면 길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정해복지는 사회복지의 바른 이정표가 된다는 사실을 지면을 통하여 칭찬하고 싶습니다. 겸손하신 회장님의 탁월한 지도력과, 조용히 흐르는 물처럼 함께 땀 흘리는 모든 스탭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이방인들, 곧 땅 끝에서 온 이웃을 위하여 사랑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는 필자는 작년에 정해복지로부터 휠체어를 기증받았습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을 휠체어를 여러 단체와 개인에게 공급하는 정해복지의 사회복지 실천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누었다는 점이 필자의 마음을 감동케 하였습니다. 일순간 베풀거나 안타까운 마음을 품는 정도의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꾸준히 여일하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을 보면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다가가 정성껏 도왔던 사람이, 그 다음날에도 여전히 마음이 바뀌지 않은채 관심과 사랑을 나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장면이 있는데, 정해복지의 한결같은 복지의 헌신은 마치 이와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해복지에서 관장하는 베트남의 투덕 기능 대학교는 국위선향뿐 아니라 노블리스 오블리쥐를 실천하는 모범적인 해외복지 사업이기에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의 피붙이라 할 수 있는 라이 따이한들의 긍지도 더불어 세워지지 않겠습니까?

필자에게는 정해복지의 한결같고 실속있는 사회복지 사업이 아주 특별하게 여겨집니다. 그 이유는 그와같은 일을 하고자 하는 모든이에게 바른 이정표요 눈위에 나있는 곧은 전철(前轍)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정해복지의 건승을 두손 모아 기원합니다.

(이글은 본 교회 송정섭 안수집사께서 상임고문으로 계신 (사)정해복지 설립 20주년을 축하하며 문창선 목사가 축사로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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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8 07:40:19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위디의 홈커밍데이에 많은 은혜와 기쁨이 있었습니다. 특히 한해를 돌아보며 주님께서 위디를 통하여 하신 일들을 계수하여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전트립, 외국인 근로자 선교 학교(MMS/15주간), 선교바자회, 미션나가2007, 위디의료선교, 기도합주회 리더 스쿨, 2008 세계 이주근로자 선교 지도 발행, WSBAK 와 안양시 기독교 연합회 100주년 성회, ABBAM 사역 연계, LMTC 대회교육, 나가랜드 주정부 각료 방문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였으며, 산소망 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사역 참여 및 후원으로 인하여 훨씬 수월하게 사역이 진행하게 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위디가 세워질 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58:11-12)”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 말씀대로 위디의 사역에 늘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풍성한 도움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우리에게서 난자들 곧, 위디어들이 행하는 수보사역들이 곳곳에서 점점 두각을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2008년에도 더욱 귀한 사역이 전개될 것을 확신하며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하신 산소망 교회 모든 성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더욱 큰 버팀목이 되어주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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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7 21:21:46

Nagaland is not a mission field but a strategic place to reach other parts of NE India and the Indian sub continent. The reason is because majority of the Naga people are Christians and ready to do missions. The major population of Nagaland is made up of Christianity and there are enough theologically trained and mission minded volunteers to do missions. In 1878, an American missionary by Dr. Clark came to Nagaland with the gospel and since then the gospel has been preached to all the tribes in Nagaland. Nagaland is considered to be almost a cent percent Christian state.

They are not just namesake Christians because they have lived as Christians for over a century now in the midst of so many religions and social evils. There surely is the hand of God involved in preparing the Naga people to be used by God to reach out to their neighbouring states and the rest of mainland India. They can also be likened to the remnants (Rom 11:4-5) for the whole of India, China and West Asia.

Jesus came not only to redeem the lost souls but also to give us an abundant and a wholistic life. To fulfil the Great Commission means to meet the social, physical and spiritual needs of the people as well. That's why Withee is involving many way in Nagaland. We need to preach good news to the poor, to release the oppressed, to give sight to the blind... etc as found in Luke 4:18 Cf Isaiah 61: -2.

Written by Rev. Barnabas C.S.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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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5 06:26:18

위디국제선교회의 선교 전략은 현지의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력이든지 재정이든지 모든 인프라를 현지에서 구축하여 복음 선교를 위해서 사용한다. 성경에도 이러한 예가 기록되어 있다. 다윗의 이야기이다. 그는 물맷돌로 적의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린다. 그리고는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벤다. 이 얼마나 기상천회하며 담대한 전략인가?

위디국제선교회의 선교전략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갖추어서 하기보다는 상대방이 갖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 외국인 근로자 선교 사역이 바로 그것이다. 선교의 인적 자원으로 사용될 수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닌 저들을 역파송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요 사역이다.

지난 6월 “미션나가2007”을 개최한 것도 만일 우리의 것으로 행하였다면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가랜드의 인력과 재정 등, 그들이 갖춘 것을 통하여 미션나가2007 대회를 성공적이고 은혜롭게 개최할 수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가? 우리보다 복음을 먼저 받아들여 이미 1970년대에 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겠다고 서원했던 자들이 아닌가?

종교성이 많은 북동부 인디아에,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는 나가랜드에, 많은 부정적인 의견과 방해가 현지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와 교육, 사회 복지와 경제 개발 협력등의 사역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갖춘 것을 사용하는 위디국제선교회의 전락과 용기, 산소망 교회의 새벽부터 밤이 맞도록 기도로 마음을 같이하며 헌신한 성도들로 인해 가능했다.

창세기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다(창26:12)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택을 입은 삶의 복된 결실의 모습이다. 며칠 전 다녀온 나가랜드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대했던 선교센터의 100배 규모의 대지와 건물을 주셨다. 하지만 우리가 현지의 것을 활용하여 사역하는 위디선교회이기에, 혹시 100배로 사역하라는 것은 아니실까?

지레 부담을 느끼고 힘들어 할 필요없이, 주셨으면 주신만큼 그렇게 허락하신 만큼 하는 것이다. 최근 산소망 성전을 이전하고자 마음을 같이하는 이 시점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역사는 한국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기대하게 하며 소원하게 한다. 주님께서 합당하다 여기시면 무엇을 안주시겠는가? 나가랜드에서 그렇셨던 것처럼 이곳 안양에서도 그리 해주실 것을 위디 스탶들과 산소망 성도들이 함께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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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21 17:19:24


안양시 기독교 연합회에서 주관하는 성시화에 초청되어 오셨던, 나가랜드의 WSBAK 회원 목사님들께서 출국하였습니다. 가시기 전날, 여선교회서 정성껏 준비하여 드린 선물을 받고 매우 감사해 하셨습니다.

성시화 대회에서 축사를 하시던 비토쉐 수 목사께서는 성시화의 성공뿐 아니라, 아프카니스탄 탈레반에 억류해있는 19명의 기독인들의 안전한 귀국을 위하여 나가랜드 교회와 성도가 함께 기도하고 있노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머물고 있었던 지난 3주 동안, 과연 19명의 형제들이 무사히 풀려나 귀국하였습니다. 이뿐 아니라 나가랜드 목사들께서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에 안양 샘 병원에서 그들을 직접 만나 축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사와 치료 목적으로 일반인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었는데, 안양 샘 병원장께서 직접 자리를 베풀어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이에 우리들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지만 그들을 만날 수 있어서 깊이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나가랜드 목사들은 한결같이 감격해하면서 사지에서 돌아온 기독청년들을 직접 보았다는 것에 고무되었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기도를 이렇게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선교에 대한 열정에 대해, 자신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나누겠다고 하였는데, 함께 기도했던 일의 응답까지도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보통 기쁜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에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세밀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도 기대합니다. 특히 산소망 교회와 위디국제선교회의 이전에 필요한 부지를 놓고 함께 기도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멋진 장소를 허락하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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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7 10:49:49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지나치게 감정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최근의 한국 교회를 둘러싼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는 분이 많다고 합니다.

이에 ‘지(知) 정(情) 의(意)’가 조화를 이루는 균형있는 신앙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순서가 중요합니다. ‘정 지 의’가 아니라 ‘지 정 의’ 입니다. 이성이 먼저 움직이고 그 다음에 감정이 따라갈 때, 의지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런 순서로 받아들인 신앙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순교까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정이 먼저 가고 이성과 의지가 그 뒤를 따라갈 때는 감정의 변화에 따라 이성과 의지가 항상 뒤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기독교(개신교)는 너무나 감성적인 측면에 치우쳤습니다. 그러다보니 목회나 선교 등 모든 부분에서 문제가 분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성도는 모두 ‘지 정 의’의 균형있는 신앙을 지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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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7-09 12:22:25

장예모 감독의 영화 “영웅”을 보면 기가막힌 대화가 나온다. 주인공이 진시왕을 죽이려 우려곡절 끝에 그의 앞에 서게 된다. 그는 비록 무장이 해제되었지만 “왕이여 당신의 칼로 당신을 죽이면 된다”며 영웅다운 말을 한다.

성경에도 이러한 예가 기록되어 있다. 다윗의 이야기이다. 그는 물맷돌로 적의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린다. 그리고는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벤다. 이 얼마나 기상천회하며 담대한 전략인가? 위디국제선교회의 선교전략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갖추어서 하기보다는 상대방이 갖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 외국인 근로자 선교 사역이 바로 그것이다. 선교의 인적 자원으로 사용될 수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닌 저들을 역파송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요 사역이다. 금번 나가랜드에 “미션나가2007”을 개최한 것도 만일 우리의 것으로 행하였다면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웅처럼 다윗처럼 그들이 갖춘 것을 통하여 미션나가2007 대회를 성공적이고 은혜롭게 개최할 수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가? 우리보다 복음을 먼저 받아들였던, 기독률 100%에 육박하는, 이미 1970년대에 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겠다고 서원했던 자들이 아닌가?

무엇인가를 처음 시작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곧 믿음이라고 표현 할 수 있겠다.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결국은 나아갔던 아브라함의 믿음은 결국 용기이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종교성이 많은 북동부 인디아에,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는 나가랜드에, 많은 부정적인 의견과 방해가 현지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션나가2007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위디국제선교회의 용기요 산소망 교회의 믿음 때문이었다. 새벽부터 밤이 맞도록 기도하는 성도들, 바자회로 헌신하며 개인적으로 적금을 깨고 결혼반지까지 내어주는 손길로 가능할 수 있었다. 5박6일 동안 세미나, 주제강의, 선택강의, 스페샬 프로그램, 소그룹, 상담, 저녁 부흥회, 새벽예배, 등으로 진행되었으며 방글라데쉬/미얀마/마니풀/아루나찰 프라데쉬/아쌈/미조람/네팔 등지에서 함께 참여하였다. 위디 메디칼 팀의 3일 동안 900여명의 환자 본 일은 현지를 깜짝 놀라게 할 일이었다.

만 명의 선교사 파송에 내가 속하겠다는 젊은이들의 눈물어린 서원과, 시큰둥하던 현지 지도자와 관계자들도 사과를 하고 협조를 다짐하는 약속은 미션나가를 통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이셨다. See you again ! missionNaga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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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6 07:25:24

I feel bad in knowing that you did not get help that you so desperately needed. I hope in time that your family will find comfort and healing. God bless. ("네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필요로 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걸 알고 가슴이 아팠단다. 머지않아 너의 가족이 평온을 찾아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축복을....)

이글은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하여 희생된 33명(가해자 조승희 포함)을 기리는 추모석들이 세워진 가운데, 조승희의 추모석 앞에 기록된 글이다. 비록 그가 가해자이기는 하였지만, 또 하나의 희생자라고 여긴 급우들에 의하여 쓰여진 글이다.

또 추모석 오른쪽 옆에는 "조승희의 가족에게.. 사랑으로(To the family of Cho Seung Hui with love)"라고 쓰인 종이도 있어, 이 추모석이 조승희의 죽음을 애도하고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미국인들의 성숙한 자세를 보게 된다. 그들의 정서와 문화에 깔린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를 볼 수 있다. 함께 애통해하며 함께 위로하는 진정한 기독인들의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작은 피해에도 과잉반응을 보이며, 상대의 실수를 용납지 않으려하는 태도에 익숙한 우리에게 비춰진 그들의 모습은, 눈부신 푸른 바다이다. 이에 새삼스레 우리도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넓은 신앙과 가슴을 지니고픈 도전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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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2 06:44:40


불경(佛經)에 보면 아들을 잃은 여인이 석가모니에게 살려달라고 간청을 하자 “죽음은 인생이 풀 수없는 문제”라고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인생은 죽을 수밖에 없고 우리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도 죽음을 말한다. 그러나 죽음을 넘어서 영생을 약속한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롬6:23)이라고 기록한다.

이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의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시고 죽은 자를 일으켜 살게 하신다고 믿었다(신32:39, 삼상 2:6).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 앞에서 “아버지께서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요5:21)하시며 당신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다.

즉 “아들에게 더 큰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겠다는 말씀의 성취로써 예수께서 사람들의 생명을 주관하시고 또한 영원히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곧 예수를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믿음은 철학이나 타 종교를 믿는 믿음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성경에서는 구별되어 다른 것을 “거룩”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세상 사람들의 믿음과는 분명히 달라야한다. 지난 연휴에 혹이나 우리의 거룩해야할 믿음이 상실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하겠다. “너희는 거룩한 믿음위에 너희를 건축하라(유1:20)!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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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9 06:08:57

"A drop of water makes big ocean!" 이 문구는 폭포가 떨어져 강줄기가 되어 흐르는 모양의 그림위에 적혀있는데, 캘커타에 있는 “나가 게스트 하우스”의 벽면에 붙어있다. 늘 보던 문구였으나, 이번 방문에서 볼 때는 그 느낌이 매우 달랐다.

2000년부터 시작된 나가랜드에 대한 사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돌이켜 보면 그저 보잘것없는 하나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눈에 뛰지도 않는 작은 물방울, 쉽게 말라져버릴 물방울, 누구에게도 만족을 줄 수 없는 물방울, 그런 것이었다.

2007년에 즈음하여, 그 물방울이 꽤 크기를 갖추었다. 양도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요구할 만큼 흐르는 물이 되었다. 그러나 대양을 이루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이 정도의 양으로는 어림도 없다. 많은 물방울들이 함께 모여야 하고 합해져야 한다.

이번 나가랜드 방문에서는 많은 분들을 길에서, 차에서, 비행기에서 만났다. 그 분들은 한결같이 내가 간절히 만나기를 원했던 분들이다. 워낙 통신 시설이 열악하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기에 한번 만나려면 어려움을 겪는데, 이번에는 너무도 쉽게 만났다.

그들에게 “미션나가2007”에 참석하여 강사로, 봉사로 섬겨주시도록 구두로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거절하는 분들이 없었다. 그들은 위디와 함께 대양을 이루어 나가랜드를 적시게 될 물방울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A drop of water makes big oc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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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14 11:40:52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우리 위디 식구들은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짜릿짜릿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오늘은 한 가지만 소개 하려고 한다.

우리는 매주 일요일 저녁 6시에영어예배를드린다. 언젠가부터 네팔에서 온 하리(Hari)라는 형제가 가끔 예배에 참석하면서, 자기가 머무를 수 있는 처소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연말에 다시 와서는, 이제 자기가 한국에서 신학교 공부를 마쳤으니, 본국 네팔에 돌아가서 교회개척과 신학설립 등의 일을 하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는 금년에 나가랜드에서 행할 미션나가2007에 총력을 경주한 터라 네팔까지, 그것도 우리 신학교에서 훈련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협력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을 섭섭하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 수 없는지라, 매주 토요일에 있는 기도회와 영어예배에 참석할 것을 권면했다.

그러던 중 1월 중순에 일면식도 없는 어느 교회의 장로님 두 분이 찾아오셨다. 그분들이 섬기는 교회가 이제까지는 아프리카지역에 선교를 했는데, 이제부터는 네팔에 선교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단다. 그러니 선교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위디 선교회에서 선교사를 추천해 달라고 말씀하시며, 그 선교사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전적으로 지원하시겠단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전율을 느끼지 않는가?

여기에 내가 더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는가?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전할 뿐이다. 조그마한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섬세하고, 커다란 사건이라기 우리 가운데서 매일 매일 경험되는 일이 아닌가?

그 후, 네팔에서 온 하리(Hari)형제는 위디에서 3개월 정도 공동체 훈련을 통하여 선교사로서 필요한 준비를 한 후, 네팔에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정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한다.

(위디 바이블 칼리지 류수경 학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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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23 09:47:19

복음전파하시며  예수님께서 갈릴에 두루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병든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이유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Withee선교회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단체가 몇몇 있습니다. 선교단체들은 대개 인권문제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외국인 근로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적응이 어렵고 열악한 상황에서 돈을 벌겠다는 한가지 소원을 갖고 갖은 어려움을 참아 내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불법적인 것도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감당해 주시는 우리 나라 발전에 일면 많이 수고하는 분들 중에 속하는 분들입니다. 그들이 사람답게 일하고 돈도 벌고 우리 나라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자국에 돌아가서 우리 나라에 좋은 인상을 갖는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기에 그들의 인권에 힘쓰는 부분도 중요합니다. Withee 선교회도 인권부분에 전혀 무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것을 더 중요시 여기는 선교회입니다. 그들의 인권도 도와 주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주일과 토요일에는 신앙활동을 통하여 신앙이 성숙하여 좋은 영적지도자가 되어 자국에 돌아가서 선교활동을 한다면 우리가 많은 비용을 들여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Withee 선교회는 이런 주님의 부르심에 짧은 역사지만 선교활동이 활발하여 외국에서 도리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협조하고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모든 것보다 우선으로 하고 있어서 감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는데 쓰임받기를 더욱 기도합니다.

-- 위디국제선교회 윤민영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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